관광지 및 문화재

  • 양동면 > 주변관광안내 > 관광지 및 문화재
쌍학리 효열각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 17 호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이 고장 출신의 효자 방영환(孝子 方榮煥), 효부 전이란(孝婦 全伊蘭)과 이정자(李貞子) 세 분의 효행(孝行)을 기리고 효친사상(孝親思想)을 장려하기 위해 건립된 정각(旌閣)이다.

이 건물은 양동유림(楊東儒林)을 중심으로 한 유도회(儒道會)에서 자체로 기금을 조성한 후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3년 10월에 준공(竣工)하였다. 팔작(八作)지붕에 한식기와를 얹은 겹처마 목조(木造)건물로서, 정각 상단에는 효열각[孝烈閣}이란 현액(懸額)이 걸려있다. 정면은 3.65m, 측면은 2.40m의 규모로서 정문(旌門)은 아아치型의 쌍문(雙門)을 마련했다. 효자 방영환(孝子 方榮煥)은 모친이 80세에 우연히 눈이 멀게 되자 날마다 정수(淨水)를 바쳐 10년간 기도(祈禱)한 결과 90세에 드디어 눈을 뜨게 했다고 한다. 효부 전이란(孝婦 全伊蘭)은 26세에 청상(靑孀)이 되었으나 40여년간 노시부모님을 지성(至誠)으로 모셔 효행(孝行)이 모범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효부 이정자(孝婦 李貞子)는 25세에 청상(靑孀)이 되어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을 뿐 아니라 7년간 시묘(侍墓)를 하는 등 전통적인 효친사상(孝親思想)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의병장 이춘영 묘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 18 호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이춘영(李春永 1869∼1896) 선생은 조선말(朝鮮 末)의 의병장으로 자는 우삼(友參), 호는 괴은(槐隱), 본관은 덕수(德水), 양평 출신이다.
고종 32년(1895) 민비(閔妃)가 시해(弑害)되자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맹영재(孟英在)와 그 부하 400여명을 포섭, 단양(丹陽)에서 일본군을 격파했다. 이어 제천(堤川)으로 향하다가 동지 이민옥(李敏玉)의 배신으로 관군의 기습을 받아 충주(忠州)로 피신, 유인석(柳麟錫)의 의병부대와 합류하여 중군(中軍)으로 활약했다. 조령(鳥嶺)·달천(達川)·안보(安保)등지에서 관군과 일본군,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을 격파한 뒤 충주(忠州)싸움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추서(追敍)되었다. 묘 앞에는 상석, 우측에 묘비가 있는데, 묘비 앞면에는 한글로 [우삼 이춘영 묘}라고 음각되어 있다. 비는 1970년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이다. 묘비의 규모는 높이가 117㎝, 폭 41㎝, 두께는 17㎝이다.

택풍당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 16 호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조선 중기(朝鮮 中期)의 학자·문신이었던 이식(李植·1584∼1647)선생이 제자와 자손들의 교육을 지도하고 학문 연구를 쌍학리(雙鶴里)안골 부락에 서당(書堂)을 건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생의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광해군2년(1610)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뒤 대사성(大司成)·대제학(大提學)을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척화(斥和)를 주장,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번양(藩陽)에 잡혀갔다가 탈출해 돌아왔다. 대사헌(大司憲), 형조·이조·예조의 판서를 역임했고,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 저서에 [택당집(澤堂集)] 이 있다.

당대에 이름난 학자로서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특히 한문학(漢文學)에 정통하여 조선 중기 한문학 4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택풍당(澤風堂)은 조선 광해군11년(1619)에 택당(澤堂)선생이 건립하여 학문(學問)을 닦고 강론(講論)하던 곳으로, 근년에 종중에서 보수(補修)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2층 누각(樓閣)형식의 특이한 건축물로서, 팔작(八作)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은 겹처마집이다. 현재 이 건물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4.60m의 건물로서 외문(外門)과 잘 보수(補修)된 담장을 갖추고 있다. 2층루(層樓)에는 툇마루를 달았고, 온돌방안에는 갓을 비롯한 택당선생이 사용하던 유품(遺品)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양평 의병묘역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일제에 의한 1895년(을미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공포후 화서 이항로 선생의 화서학파 문인인 안종응의 주도하에 이춘영, 안승우 등과 김백선을 주축으로 한 포수 400여명이 전국 최초로 의병을 거의하였다.
양평의병은 원주·단양전투에서 큰 공을 올리는 등 인근 강원지방과 충북지방 의병봉기의 도화선이 된 대표적인 척사의병이며, 이후 양평의병의 창의정신은 1907년 후기의병, 3·1독립만세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우리지역에서는 이분들의 애국정신과 영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97년 문화유산의 해에 양평문화원과 의정부 보훈지청의 지원을 받고 후손들의 후원금으로 후면과 축면에 당시 의병의 조직 계보를 새겨 양동면 체육공원내 효열각 우측에 세우고 추모제를 봉양하다가 양동 을미의병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에서 2007년 양동면 석곡리에 양평 의병묘역을 조성하고 당년 8월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 양평 의병묘역
  • 양평 의병묘역1
  • 양평 의병묘역2
양평 독립유공자 공적비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2007년 양동면 석곡리에 조성된 양평 의병묘역에 기 건립된 을미의병 추모비와의 조화를 통해 후손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한층 증대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산화하신 양평 출신 독립유공자분들의 공적을 후세에 계승하기 위하여 2010년 4월, 이곳에 양평군 독립유공자 공적비를 설치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이곳 묘역이 참배지는 물론, 아동·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장소로 제공될 수 있는 성역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독립유공자 공적비 8기 건립
(이연년, 변준호, 신석영, 이승룡, 양재은, 남상철, 윤기영, 김영일 지사)
- 안기영 지사 묘 이장
- 김백선의병장 어록비 추가 설치
- 묘역주변 조경사업 및 묘역 입구 안내간판 설치

  • 양평 독립유공자 공적비
  • 양평 독립유공자 공적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