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이항로기념관 주변유적 지도
노산사지 이미지 노산사지 경기도 기념물 제43호노산사는 화서 선생이 태어난 집터이자 선생이 생전에 경모하던 주희와 송시열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던 사당 터이기도 하다. 화서 이항로 선생이 죽은 후 그의 영정도 같이 모시고 있다. 100여 평에 이르던 사당은 한국전쟁 당시 전소하였고, 지금 있는 3칸의 작은 사당은 1954년 유림(儒林)들이 이항로의 높은 덕행과 학식을 기리기 위하여 전에 노산사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현재의 노산사는 경내 264㎡ 규모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이다. 전면에 제월대와 묘정비 및 기념비가 있다.
  
벽계강당 이미지 벽계강당벽계강당은 이항로 선생이 생전에 강당 건물을 구상하여 그린 설계도대로 축조한 것으로 1999년에 건립하였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장대석 기단 위에 잘 다듬은 원형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익공계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이항로 묘원래의 묘는 생가에서 10리쯤 떨어진 정배리 통정골 야산에 있었으나, 최근 노산사(蘆山祠) 뒤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묘 앞에는 상석과 묘비, 향로석,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에는 이항로의 묘로 부인 고령 박씨도 함께 합장하였음이 명시되어 있고, 비문에는 이항로의 행적과 사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제월대 이미지 제월대화서 이항로 선생이 56세(1847) 때 새긴 글로 노산사지 앞 뜰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30㎝, 너비 72㎝, 두께 35㎝ 규모의 작은 타원형 자연 암석의 앞면에 전서체(篆書體)로 “霽月臺”라 새겼고, 상부의 평평한 곳에 6열로 “莫遺微雲 點綴練光 極虛極明 以配太陽 丁未夏 華西銘”(조그만 구름이라도 보내어 맑은 빛을 얼룩지우지 말라. 지극히 맑고 지극히 밝으니 태양과 짝하리라. 정미년 여름에 화서는 기록한다)의 22자를 해서체(楷書體)로 새겼다.
  
석문 이미지 석문벽계마을 묘고봉 동북편 속샛마을 앞 개울의 도로변에 있는 바위절벽에 새겨져 있는 이항로 선생의 친필이다. 큰 바위를 판판하게 연마하여 전서체(篆書體)로 “石門”이라 양각하였다. 각 글자의 크기는 26×36㎝이다.
  
명옥정 이미지 명옥정벽계마을 동쪽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소로변에 90×190㎝ 가량의 직사각형 바위 상부 평평한 곳에 글자마다 12×17㎝의 크기로 “명옥정”이라 화서 이항로 선생의 친필이 음각되어 있다. 명옥정이란 ‘옥’을 울린다는 뜻으로 옛 선비들이 허리에 옥을 차고 다니므로 선비들이 모여 노는 바위라는 뜻으로 새긴 듯하다. 앞 시내의 물소리가 옥을 울리는 듯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분설담 이미지 분설담벽계마을 동쪽에 있는 계곡물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데 좁은 바위틈으로 흐르는 급류가 돌에 부딪쳐 내뿜는 광경이 마치 눈발이 날리는 것과 같아 전서체(篆書體)로 “분설담”을 화서 이항로 선생이 새겼다.
  
낙지암명옥정 아래에 벽계천 가운데 있는 큰 바위에 화서 이항로 선생이 초서체(草書體)로 새겨놓은 것으로 자연의 참뜻을 즐긴다는 의미를 가진다.
  
애내성중만고심 이미지 애내성중만고심송나라 주자(朱子)의 무이구곡시(武夷九曲詩) 중 오곡(五曲)에서 나오는 문장으로 ‘뱃사공 노래 소리에 만고의 근심이 가득하네‘라는 뜻이다.
  
쇄취암 이미지 쇄취암글자마다 20×30㎝정도의 크기로 ‘푸른빛을 가둬둔다’는 뜻의 “쇄취암”을 해서체(楷書體)로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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