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양평군(楊平郡)은 1908년 9월 당시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을 합병하여 양평군(楊平郡)이라고 칭하게 되었는데, 양근군(楊根郡)은 고구려시대에 항양군(恒楊郡), 신라시대에 빈양(濱陽)으로 개칭하였 으며, 고려시대 초기에 다시 양근(楊根) 으로 개칭하여 광주(廣州)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고종때 에 영화(永化) 라 칭해오다가 고려 공민왕 5년에 군으로 부활되면서 양근군(楊根郡) 으로 개칭 (1356년)하였다.
지평군(砥平郡)은 고구려시대에 지현현(砥峴懸), 신라시대에는 지평(砥平), 고종 32년에는 지평군 (砥平郡,1895년)으로 칭하였었다.
이후 1914년 3월에는 본군 관할 남종면(南終面)이 광주군(廣州郡)에 이속되었고, 1942년 4월 에는 본 군 관할 설악면(雪岳面)이 가평군(加平郡)으로 이속되었 으며, 1963년 1월에는 여주군(驪州郡) 관할 개군면 (介軍面)이 본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 7월에는 서종면 (西宗面)의 삼회리(三會里)와 노문리(盧門里) 일부가 가평군(加平郡)으로 이속되었으며, 1979년 5월에는 양평면(楊平面)이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혁

~1900년/ 양근군(楊根郡)

- 고구려 시대 : 항양군(恒楊郡) - 신라 시대 : 빈양(濱陽)으로 개칭 - 고려 시대 초 : 양근(楊根)으로 개칭하고 광주(廣州)에 속함 - 고려(고종) : 영화(永化)라 칭함 - 고려(공민왕) : 군으로 부활되면서 양근군(楊根郡) 으로 개칭(1356년)

~1900년/지평군(砥平郡)

- 고구려 시대 : 지현현(砥峴懸) - 신라 시대 : 지평(砥平) - 조선 시대(고종) : 지평군(砥平郡,1895년)

1908년 9월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을 합병하여 양평군(楊平郡)으로 칭함

1914년 3월

본군 관할 남종면(南終面)이 광주군(廣州郡)으로 이속

1942년 4월

본군 관할 설악면(雪岳面)이 가평군(加平郡)으로 이속

1963년 1월

여주군(驪州郡) 관할 개군면(介軍面)이 본군으로 편입

1973년 7월

서종면(西宗面) 삼회리(三會里)와 노문리(盧門里) 일부가 가평군(加平郡)으로 이속

1979년 5월

양평면(楊平面)이 양평읍(楊平邑)으로 승격

2006년 12월 1일

지제면(砥堤面)이 지평면(砥平面)으로 개칭